여홍철은 1971년 5월 28일 출생으로서 대한민국의 전직 기계 체조 선수이자 대학 교수 및 체조 해설가입니다.

1996년 하계 올림픽 기계 체조 남자 개인 도마(뜀틀) 부문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는데, 대한민국 올림픽 체조 최초의 은메달이다. 이후 그의 뒤를 이어 2012년 하계 올림픽에서 양학선이 대한민국 최초의 올림픽 체조 금메달을 획득하게 된다. 세계 기계 체조 선수권 대회에서도 두 차례 입상하였으며 대한민국 체조 선수로서는 최초로 아시안 게임 2연패를 달성하였다. 2000년 하계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답니다.

 

 

전남체육고등학교와 경희대학교를 거쳤고, 한국체육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 경희대학교 체육학부 스포츠지도학과의 교수로 정식 임용되어 재직 중이다. 그의 딸 여서정 또한 체조선수로 활동 하고있답니다.

 

- 기술 여 1, 여 2
그가 최초로 개발한 기술 '여 1', '여 2'는 어린 시절부터 머리 속에 그려왔던 상상 속 기술을 현실로 이뤄낸 것으로, 국제 체조 연맹에서 여홍철의 독보적인 기술에 주목하여 그의 성을 붙여 '여(YEO)' 기술로 정식 명명하게 된다. 여홍철이 초등학교 때 처음 상상하고 그려 왔던 '여 1(YEO 1·쿠에르보 한 바퀴 반)'기술은 손을 짚고 몸을 틀어 뒤로 세 바퀴를 도는 고난도의 기술이랍니다.

 

 

'여 2(YEO 2·쿠에르보 더블 턴)'는 공중에서 몸을 펴 두 바퀴 반을 비트는 기술로 이 역시 착지불안이 따르는 고난도 기술이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중국의 리샤오솽을 이기기 위해 전지 훈련 당시 이 기술을 개발했답니다.

애틀랜타 올림픽 기계 체조 도마 부문 예선 3위로 결선에 올라 알렉세이 네모프(2000년 시드니), 리샤오솽(1996년 애틀랜타), 비탈리 셰르보(1992년 바르셀로나) 등 올림픽 개인 종합 챔피언들과 치열한 경합을 벌였지만, 우려하던 착지 불안에 의한 뼈아픈 실수로 네모프에 이어 은메달에 머무르고 만답니다.

 

 

- 딸인 여서정에 대해서!!
어머니가 국가대표 팀 코치였던 시절 태릉선수촌에 자주 방문하여 선배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보며 체조선수의 꿈을 키웠다. 9살 때부터 체조를 시작하였으며, 체조를 시작한지 3년 만인 12살 때 전국체전을 휩쓰는 등 두각을 드러냈다. 중학생 때도 각종 대회에서 꾸준한 성적을 거두었답니다.

**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출전
첫 출전한 아시안 게임에서 도마 부문 금메달을 차지하며 부녀가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에 등극하게 되었다. 이 당시 아버지가 KBS 기계체조 해설 위원을 맡고 있었는데, 그 덕에 딸이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직접 중계하게 되었답니다.

 

딸이 금메달을 따는 순간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옆에 있던 이영호 아나운서도 같이 눈시울을 붉혔다. 이 덕문에 그녀는 한국 여자체조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딸 것으로 기대받는 한국 여자체조의 간판으로 등극하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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